2008년 06월 11일
이명박 vs 노무현, 정순왕후 vs 정조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던가?
200년이 좀더 지난 지금 다시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같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정순왕후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개혁과 개방을 외면하고 보수와 폐쇄로 전환한 세도정치를 펼쳐 사실상 조선의 멸망에 기초(?)를 쌓은 인물이라고 한다.
정순왕후는 정조가 이룩했던 개혁과 성과를 완전히 백지화시켜버리고, 벽파인 공서와 결탁하여 시파의 신서파 대신을 모함하고 시파 인사들이 다수 관여하였던 천주교에 대한 금압령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옥사당하고, 정양종 등은 처형되었고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유배되어졌다. 종친 은언군과 부인 및 식솔들도 사사시키는 만행(?)을 저질렸다.
정조는 전대왕의 탕평론을 이어받아 왕정체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진정한 위민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조의 국정 공약은 크게 민산(民産), 인재(人才), 융정(戎政), 재용(財用) 등 4분야로 나누어 제시했다.
민산을 위해 민의 폐악을 없애야한다는 신념으로 각종 조세법을 개역하였고, 잦은 어사 파견을 통해 지방 행정의 쇄신을 꾀하였다. 또한, 시전 상인의 특권을 없애 상업활동의 기회를 균등히 했고, 형법 및 법전을 개혁하여 올바른 법치의 기반을 다졌다.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과거재도의 개선과 규장각에 검서관 제도를 신설하여 박지원의 제자인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의 인재를 등용하였다.
융정을 위해서는 기존 5군영보다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중심으로 병력을 강화하고 서해의 해방을 위해 교동의 통어영과 강화도 경영에 힘썼다.
재용을 위해서는 환곡 행정의 전국적인 현황을 조사하고 전세 징수의 기반 상황을 파악하는 등 각 관서간의 급대 관계의 개선을 통해 각 계층의 부당한 부담들을 경감시켰다.
이러한 정조의 개혁과 개방은 골수 보수 세력의 본좌인 정순왕후의 보수, 폐쇄에 의해 막혀 결국 조선 멸망의 시발점이 되었다.
역사는 돌아돌아 200년이 좀 지난 지금,
다소 언행에서 격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국민의 따끔한 눈초리를 받았지만, 탈미국화가 전세계적인 흐름 상에서 국가적 아젠다를 설정하고자 노력했던 노무현과 다시금 미국을 바라보려고하는 이명박의 이 모습들에서
과거
정순왕후와 정조의 관계가 세삼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 by | 2008/06/11 13:48 | 여행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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